BOOK

MY BOOK - 한강(韓江) / 채식주의자

단단콩알 2024. 10. 17. 04:06


- 부끄럽게도, 노벨문학상 수상 전엔 한강(韓江) 작가님을 알지 못했다. 나란 사람이, 좋아하는 것 이외의 것엔 한 톨의 관심도 나누어 주지 못하는, 편협한 외골수이기 때문이리라. 구차한 변명을 덧붙이자면, 작가님을 알아야만(?!) 하는 마지노선이었을지도 모를 2016년(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이, 나에겐 하루하루 고군분투하기에도 힘겨웠기 때문이다.

- 품귀현상에 온나라가 들썩일 때, 난 운좋게도, 동생에게 이미 <채식주의자>가 있었다. 나의 한결같은 소나무 취향을 너무도 잘 아는 동생이, 책을 건네며 내 취향은 아닐거라고 했다. 진짜...확실히...내 취향은 아니었다..ㅎㅎㅎ;;;

생각의 늪으로 한없이 끌고 들어가는 작품은 확실히 내 취향은 아니다. 그래서 사건 자체나 그 해결과정이 아무리 몰인간적이어도 엔딩만큼은 확실한 추리물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족하기 그지없는 나의 빈약한 문학적 소양에도, <채식주의자>는 너무도 훌륭한 작품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맨부커상 수상이든 노벨문학상 수상이든 관계없이.

- 얼마만큼의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벨상 수상조차도 어느 정도의 정치적 배경(국력)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러 번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도  고은 시인님의 수상이 불발되었던 건, 그것도 큰 이유라 했다. 그 신빙성에 관계없이, 난 어느 정도 수긍이 갔었다.
그래서, 한강 작가님 수상자체도 기뻤지만, 우리나라도 그 정도의 힘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 국민으로서 한국인으로서 너무 기뻤다. (애국자 코스프레 아님. ㅎㅎ)

- 전세계의 축하의 물결 속 갑툭튀 우스갯소리.
남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건 인지상정이지만, 사돈이 땅 산 것 같이 구는 건 좀~
다른 이의 재능이나 배경을, 그의 노력을 폄하하는 수단으론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이"의 교훈을 잊지말자~~^^
나이나 지식의 깊이는, "진정한", 지성인이나 어른의 척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진정한"은 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척"은 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남을 깎아내리려다, 자신의 치졸함만  드러냈으니, 세상사..참..재밌다.


"채식주의자"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는, 잘 보이기 위한 "~척"도, 다른 남자와의 비교에 의한 위축도, 자신의 열등감도.. 신경쓸 필요없는,  세상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내와 결혼했다. 결혼 후 5년 동안, 말수가 적은 아내는 평범한 아내 역할을 무리없이 해냈다. 악몽을 이유로 극단적 "채식주의자"가 되기 전까지.
상사 가족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모두를 불편하게 한(평소 불편해하던 브래지어도 하지않은 차림으로, 모든 것엔 무관심한 태도로 채식만 한) 그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듯 그는 장모와 처형에게 아내의 채식을 얘기한다.
가족들의 질타와 회유에도 달라지지 않던 아내는, 처형의 집들이에서, 장인의 폭력과 강제로 고기를 먹이려던 행동에, 짐승같은 비명과 함께 과도로 손목을 긋는다. 동서(처형의 남편)의 응급처치로 목숨은 구하지만, "내"가 잠든 사이 병실에서 사라진 아내는, 구경꾼들 사이에서 토플리스인 채로, 움켜진 오른손엔 물어 뜯기고 피를 흘리는 작은 동박새를, 입술엔 자신의 상처자국을 핥은 붉은 피를..


"몽고반점"

어느 날 아내에게서 처제 "영혜"에게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얘기를 듣고부터, 화가인 "그"는 잠재되어 있던, 괴물같은 관능적인 욕구가 꿈틀거린다. 2년 전 자신의 집에서 손목을 그었던 처제 "영혜"를 (병원으로 가기위해) 등에 업었을 때 올곧이 느꼈던, 브래지어를 하지않은 그녀의 가슴과 엉덩이. 거기다 엉덩이에 남아있다는 조그만 몽고반점에 대한 상상은, "그"의 관능적인 창작욕구와 성욕을 불타 오르게 한다.

동서(처제 "영혜"의 남편)의 이혼서류 접수로 동생 "영혜"를 걱정하는 아내의 걱정을 덜어준다는 핑계로, "그"는 처제 "영혜"의 자취방에 찾아간다. 문이 잠기지 않은 집에 들어갔다, 평소 불편해 옷을 입지않고 있다는 처제 "영혜"의 알몸을 보게 되고, 흥분하는 그. 그리고, 처제 "영혜"에게 모델을 부탁한다. 아내 몰래!!

촬영된,  꽃을 그린 알몸의 처제 "영혜"의 모습에 흥분한 "그"는, 몸에 꽃을 그린 남녀가 교합하는 장면 -자신을 대입-을 찍고 싶은 욕구에 치닫고. 결국, 후배 J를 설득해 -처제 "영혜"의 정체는 밝히지 않은 채- 작업을 하지만, "실제"를 원하는 "그"를 거절하며, 가버리는 후배 J. 욕구를 드러내는 "그"를 처제 "영혜"가 거절하지만, 꽃이 그려진 "그"라면 거절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예전 사귀었던 P에게, 자신의 스케치대로 자신의 몸에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처제 "영혜"를 찾아간 "그"는, "그"가 상상했던 모든 욕구를  영상에 담는다. 깊은 잠에 빠졌던 그가, 일어나서 마주한 현실 "아내". 모든 것을 알게 된 아내는 정신병원에 연락하고. 처제 "영혜"의 발코니에서 뛰어내리려던 "그"는 그 자리에 못박혀, 삶의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인 듯 처제 "영혜"의 육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무 불꽃"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직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김인혜".
남편과 네 살 터울의 동생 "영혜"의 추문 후, 부모님과 남동생 내외는, "영혜"를 버렸고, 추문을 떠올리게 하는 자신과의 인연을 끊었다. 남편은 수개월의 소송과 지루한 구명운동 끝에 석방된 후, 잠적해 다시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9개월 전 자정쯤에 전화해, 한 마디의 사과도 용서를 구하는 말도 없이, 아들이 보고 싶다는 말만했을 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고, 전화선을 빼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영혜"는 버릴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이 모든 것을 막을 수 있었을 한 순간이라도 있었지 않았을까, 돌이켜 보며 후회한다. 베트남 참천용사였던 아버지의 무자비한("영혜"에게 가장 가혹했던) 폭력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그래서 숲에서 집이 아닌 다른 곳에 가자던 열살 "영혜"의 간절함을 들어주지 못했던 일부터.

추문에도, 그녀는 계속 살아나가야 한다. "영혜"의 병원비를 내야 하고, "영혜"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고, 아이도 책임져야 했기에.

석달 전, 비내리는 어느 날 입원중인 정신병원에서 사라졌다 되돌아 온 "영혜"는 모든 음식을 거부 중이다. 이젠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링거를 놓을 자리조차 찾을 수 없는 "영혜"의 몸. 튜브삽입조차 거부하는"영혜"는, 결국 위출혈로 피를 토하고, 구급차를 타고 서울의 병원으로 출발한다.

<채식주의자> ..
나에겐..
메스꺼움이 느껴지는 불편함이었고, 
혼란스러움이었으며, 아픔이었다.


- 누가 가장 큰 피해자인가. 나는 단연코, "영혜"의 언니인 김인혜라고 생각한다. 남편과 동생 "영혜"의 추문이 있던 해인, 2년 전 그녀는 한달 가까이 하혈을 했다. 병원으로 가던 길,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한없이 인내하며 살아왔던 그녀는 한번도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다고 느낀다. 하혈의 상처에도, 안팎으로 살림과 아이를 챙기느라 녹초가 된 그녀를, 며칠 만에 돌아온 남편은, 그녀의 거절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안으면서 낮게 말했다. 잠깐만 참아..그 때 그녀는 그 동안 잠결에 그 말을 무수히 들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잠으로 고통을, 치욕마저 지우곤 했다는 것을. 그러고 난 아침엔 자신의 눈을 찌르거나, 끓는 물을 머리에 붓고 싶어지곤 했다는 것을. 그렇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인내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너무 가슴아팠다.

"나"는 평온한 삶을 위협하게 된 아내를 버렸고,
"그"는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알면서도 자신의 욕망에 철저히 충실했고,
"영혜"는 자기파괴적이긴 했지만, 원하는대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부모님과 남동생은 그녀와 "영혜"를 버렸다.

모든 이가, 어떤 방향이로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지만, 그녀 김인혜만은 그러지 못했다. 추문을 짊어지고도 살아내야 하는, 고통을 모두 하혈하듯 쏟아내면서도, 참아내야 했다. 단지, 어떤 일을 겪은 뒤에라도, 계속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 "외도"는 상대에 대한 기만이자, 업신여김이며, 극한의 이기심이다. 신뢰의 책임을 저버리고, 아낌따윈 필요없다는 듯 하찮게 대하는 것이며, 상대가 고통받을 것을 알면서도 자기의 욕구만이 중요한, 비열하기 그지없는 행위인 것이다.

외도는 더 이상 법적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여전히 사회적인 질타의 대상이다. 그 대상이 혼인으로 맺게 된, 사회적 가족관계라면 더 그럴 것이다.
"나"와 "그"는 모두, 사회적 가족관계의 대상에게 매력을 느꼈다. "나"는 미수범(아내와 달리, 적당한 살집이 있는 몸매, 사근한 말투, 생활력 강한 처형에 대한 매력을 느꼈고, 동서를 질투했다.)이고, "그"는 실행범(처제 "영혜"와 함께.)이다.
가족이라 불리긴 하지만, 혈연관계는 아니니까..이런 X소리라면 역겹다. 외도란, 그냥 역겨운 욕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참이 지나, 아들이 보고싶다는 "그"의 전화는 정말 이기적이다. 자신의 욕구를 불태울 땐, 생각나지도 않던 아들이 왜 갑자기 보고 싶어졌을까? 아이가 커서 알게 될, 이 크나 큰 추문에, 아들이 얼마나 상처받을지 생각했었어도, 그런 짓을 했을까? "그"의 이 지저분한 행동은, (아내뿐만 아니라) 아들에 대한 기만이자, 업신여김이며, 극한의 이기심이다.

- "영혜"는 악몽에서, 인간의 잔인함을 인지하면서 고통받는다. 어릴 때, 자신을 물었단 이유로,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매달려 한없이 달리다 피를 토하고 죽은 개. 그 개로 동네잔치를 벌이고 자신도 먹었던 그 기억이, 그리고 점점 선명해지는 악몽들이 그녀를 자기파괴로 몰아간다. 남들 눈엔 단지 이유모를 "채식주의자"였겠지만, 그녀에겐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결국엔,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죽음으로 향해간다.

참전용사였던 아버지한 무자비한 폭력이, 아님 남편의 냉담함이란 폭력이, 그것도 아님 그 모든 것들의 폭력의 조합이 그녀의 악몽을 이끌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자기파괴로, 그녀 주변 사람의 삶들은 모두 망가져버렸다.
물론, "그"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망가뜨렸지만..

- 첨부된 <해설>부분에선, 식물이란 때론 끔직할 정도로 생생한 욕망에 달아오른 동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가 자신과 "영혜"를 식물의 형상으로 구성한 결과가 지독한 동물적 욕망으로 낙착된 것은 어쩌면 예고된 결말이었는지 모른다고 했다.